그의 사랑을 확인한 순간(1)
이 전 포스팅에서 공유한 적이 있듯 나와 K는 서로 사랑의 언어가 정말 다르다. K는 도와주고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의 애정표현이자, 그렇게 상대방이 해줘야 사랑을 받는다고 느끼는 것이라면 나는 말로 표현해주는 것을 좋아하고 상대방도 나에게 말로 표현해줘야 하는 사랑의 언어를 갖고 있다. 그와 다른 사랑의 언어를 갖고 있어서, 그가 나를 정말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는 순간, 그의 사랑이 확인되는 순간들이 종종 있는데 그중 하나를 남기고자 한다.
임신 초기에 입덧이 심하진 않지만 먹고싶은 것도 아무것도 없던 시기, 처음 임신한 사실을 확인하고 산부인과에서 처음 얘기해준 것이 철분제를 잘 챙겨 먹어야 하고 철분제를 먹으면 변비가 생길 수 있으니 섬유질을 따로 챙겨 먹고 유산균도 챙겨 먹으라고 한 것이었다. 원래가 변비라는 것을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병원에서 얘기해준 것이니 병원에서 나오는 길에 약국에 들려 철분제, 섬유질 영양제, 유산균을 구매했다.
그렇게 철분제, 유산균, 섬유질을 모두 잘 챙겨 먹은 다음 날 아침 인생 최대의 위기를 경험하게 되었다. 원래 장활동이 좋은 사람이어서 그런지 섬유질과 유산균이 뱃속에 있는 모든 걸 내보내는지 뭔가 생각보다 더 시원하게(?) 화장실을 갔는데, 변기가 막혀버렸다. K는 작은 방에서 재택 근무 중이었고, 나 역시 재택 중이었는데 혼자 있을 때도 아니고 남편이 있을 때 이런 위기가 오다니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고 있던 때 갑자기 K가 화장실로 와서 문을 두들겼다.
"Are you ok? you've been staying there pretty long time." (괜찮아? 꽤 오래 있는것 같은데?)
"I.. I cannot get out" (나.. 나갈 수 없어)
"What do you mean? are you ok? are you hurt? something wrong? do you want me to come in? Open the door, let me in!" (무슨 말이야? 괜찮아?? 다쳤어? 무슨 일이야? 들어갈까? 문 열어 들어갈게!)
"......" (솔직하게 말해야하는지, 뭐라 해야 하는지 고민 중이었다)
"Mei! you ok???? say something!" (괜찮은 거야?? 말 좀 해봐!)
나갈 수 없다는 한마디에 뭔가 미드나 외국 영화에 나오는 장면처럼 뭔가 남편이 문을 쾅쾅 문을 부실 듯 두들기며 내가 괜찮은지 물어봤다.(지금 다시 생각하니 너무 웃긴다. 이웃집에서 뭐라 생각했을까 ^^;;)
"I broke the toilet" (변기를 고장낸거 같아- 원래 맞는 표현은 clogged toilet인데, 뭔가 단어가 당시에 생각나지 않았다.)
".....ah.. you scared me, can you open the door for me?" (아.. 놀랬잖아, 문 좀 열어봐)
"no, I cannot, just leave me alone, I can fix this" (안돼, 그냥 나 혼자 냅둬, 내가 해결할게)
"Is there anything I can do for you?? anything I can help?" (내가 해줄 건 없어? 내가 도와줄 건 없는 거야?)
정말 누가 들었으면 비운의 여주인공을 대하는 남주인공인 것처럼 우리의 대화는 너무나도 애틋했다.
"Can you help me get a product that unclog the toilet? a plunger and some sort of chemical product"(변기 뚫는데 필요한 뚫어뻥이랑 약품 같은 것 좀 사다 줄 수 있어?)
"ok I will get them from the store right away, don't worry, I will be right back"(알았어 내가 슈퍼에서 사갖고 올게, 금방 올게 걱정 말고 있어)
그리고 한 20분이 지났나, 달려갔다왔는지 숨을 헐떡이며 K가 집에 도착했다.
"I brought what you asked for, can you open the door?"(부탁한 거 사 왔어, 문 열 수 있어?)
"Can you just leave them by the door and go away?" (문 있는 데 두고 가면 안될까?)
"It is ok, I can take care of it, I don't think it is good for you to take care of those things since you are pregnant"(아니야, 내가 할 수 있어, 너 임신했는데, 그런 거 하면 안 될 거 같아)
"No, this is something that I do not want you to see... like ever.. please just leave"(안돼, 이런 것만큼은 평생 보여줄 수 없어 그냥 내가 할 수 있게 해 줘)
"(sigh) OK, but I will be right here, so please let me know if you need something"(하아, 알았어 대신 앞에 있을 테니까 필요하면 불러)
그렇게 약 30분 동안 화장실에서 K가 사다 준 용품으로 변기를 뚫고 나서야 밖에 나올 수 있었는데, 문을 열자 그때까지 문 바로 앞에 서있던 K가 내가 나가자마자 꼭 안아주고 등을 토닥여줬다.
"Things happen, you shouldn't have taken it so seriously"(일어날 수도 있는 일인데 너무 심각하게 생각한 거 아니야?)
그러면서 너무 당황해서 식은땀으로 젖은 내 모습을 보고는 속상했는지 아니면 걱정했는지 K 특유의 털털한 웃음으로 웃으며 위로했다. 본인이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왔다가 내가 변기를 고장 낸 것을 알게 된 것일 텐데, 화장실도 급했을 텐데 재촉하지도 않고, 내가 막은 변기까지 직접 뚫어주려고 나를 설득하던 K의 모습에 그가 나를 정말 사랑하는구나 찐 사랑이구나 느꼈다(이상하게도 아~K가 날 정말 사랑하는구나, 사랑받는 것 같다라며 몽글몽글한 기분이 들었다 ㅋ).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지만 아직 방귀도 트기 전이라 화장실도 몰래 가는 신혼이었던지라 정말 너무 당황스러웠다. 너무 많이 당황해서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 서둘러 샤워를 하고 정말 기절해서 잠들었다. 그 후 출산까지 따로 섬유질은 안 챙겨 먹고 유산균만 챙겨 먹은 변기를 막히게 했던 트라우마의 이야기이다. 다음에는 좀 더 깨끗한 내용(?)의 K에게 사랑을 받는다고 느꼈던 사랑을 확인했던 이야기를 공유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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